2008년 11월 23일 제6회 상주곶감마라톤대회를 다녀왔다.
이 대회는 2003년 제1회 하프대회를 시작으로 금년이 6회째이고 2005년도에는 MBC행사시 종합운동장 압사사고로 대회가 무산되기도 하였다.
풀코스가 신설된 것은 2006년 제4회 대회부터이며 나는 이번이 연속 3회 참가가 되는 셈이다.
2006년도에는 상주대학교(현재는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로 개칭됨)를 출발하여 외남면(내가 태어나서 자라던)을 거쳐 옥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시골길 코스였다.
이런 행사는 전 상주시가 참여하기 때문에 면사무소 직원들이 각자 자기 지역에서 주자를 응원하라는 지시(?)가 있어 재미있는 일들이 가끔 일어나고 있다.
당시 외남면에서 응원하던 초등학교 여자동기(부면장)를 만나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고는 헤어졌다가 반환점을 돌아 오는데 동태찌게에 막걸리 한잔을 권하는데 거절하기가 어려워 서너잔을 넙적 받아 마시고 들어온 경험도 있다.
이번 대회도 중학교 동기생 3명이서 달리자고 제안하여 참가를 신청하였던 것이다. 취미가 같다 보니 이들과는 다른 친구들보다 좀더 친숙한 느낌을 가지는 것 같다
매년 주최측에서 당일 새벽 잠실운동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운영키로 하였으나 금년에는 신청자가 20명에 이르지 않아 운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동서울터미날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였다.
새벽6시 가까스로 동서울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서 일단 수면을 취해 보는데 동이 트기 시작하자 잠이 깨었다. 가지고 간 MP3로 가벼운 음악을 들으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준비해 간 인절미도 몇조각 먹어둔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 안되는 승객 중에 운동화를 착용한 사람이 두어명 더 보인다. 저들도 상주에 가는 분들인가? 어느덧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점촌터미날에서 주유후 출발한단다. 시간상 상주터미날에서 다시 택시로 돌아오더라도 출발시간인 9시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기사에게 부탁해 본다. “9시에 마라톤 출발해야 되는데 터미날 가기 전 종합운동장 앞에서 좀 세워 주시지요”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거절은 아니 것 같다.
운전기사가 친절하게도 종합운동장 앞 도로에서 세워주며 잘 뛰라고 응원까지 하여 준다. 고마운 마음에 가지고 있던 음료수캔 하나를 건네고 도로에 내리니 8시20분이다. 주위를 둘러 보니 차들은 보이지 않고 운동장까지는 한참 걸릴 것 같다. 할 수 없이 같이 내린 한분과 몸도 풀 겸 농로 길을 뛰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뒤에서 경찰차가 한대 온다. 옳지 저 차도 분명히 종합운동장으로 가겠지 하며 손을 들고 부탁하니 타란다. 지방경찰 아저씨 참 친절하기도 하시지. 경찰차를 타고 운동장에 입장하기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리라.
옷 갈아 입고 짐 맡기는데 줄이 장난이 아니게 길고 줄어들지를 않는다. 이시간에 1분은 황금같은 시간인데 줄 서서 기다리는데 짜증이 난다(이 건을 포함하여 몇가지 개선사항을 친구들에게 전달하였고 내년에는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들리고 나오니 하프 주자들만 출발대기하고 있고 풀코스 주자들은 출발한지 한참 되었단다. 할 수없이 혼자서 스타트라인을 출발한다. 지난 11월 2일 중앙일보 서울마라톤에서도 캠프에서 마무리때문에 늦어서 혼자 출발한 경험이 있었기에 별로 두렵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 보기가 민망할 뿐이다.
그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건진 사진이 아무도 없는 주로에서 혼자서만 뛰는 사진이 되었다.
늦다보니 또하나 아쉬웠던 것은 같이 뛰기로 한 친구들을 만날수 없다는 것. 가다보면 어디선가 만나리라는 생각을 하고 출발할 수 밖에….
운동장을 나와 후천교를 건넌다. 지금은 확장하여 후천교로 불리지만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지금과 비교하여 아주 좁디좁은 다리가 있었는데 잉빈관다리라고 하였다. 옛날 영빈관이 있던 자리인데 이곳 발음으로 그렇게 불린 것이리라. 다리를 건너자 앞선 주자들이 후천교 북쪽에 있는 북천교 반환점을 돌아 시내로 향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옆을 쳐다보니 약속했던 친구들 둘이서 재미나게 달리고 있다. “먼저 가. 되는 대로 따라 갈께”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운동부족으로 인한 몸이 얼마나 따라가 줄는지 걱정이다.
상주시내를 한바퀴 돈다. 시내 중심가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듯 하고 새벽녘이어서인지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나 다시 후천교를 건너 사벌쪽으로 들어선다.
사벌은 삼국시대때부터 이름있는 지역이다. TV사극으로 유명하던 무인시대에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사벌주를 다스리던 왕이었다. 사벌산성은 상주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사벌면에는 사벌왕릉으로 전하는 왕릉이 있다.
오늘 뛰는 코스는 이렇게 상주시내를 거쳐 사벌면, 중동면을 돌아오는 시골길인데 차량통행은 제법 많은 도로이다. 그래 여기는 작년에도 뛰어 보았지 하며 서두르지 않고 가다가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를 서서히 추월하고 지나간다. 주로 양쪽으로는 가을겆이가 끝난 논에 하얀 비닐로 둘러쌓인 볏짚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사료용으로 발효하느라 싸 놓아 무슨 Silo라고 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왜 한번 본 것을 자꾸 잊어먹는거야. 짜증을 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포기하고 달린다.(후에 알기로는 랩핑사일로임)
또 주위에 있는 감나무에는 대부분이 수확을 하였지만 까치밥으로 몇 개 남겨둔 것과 어떤 밭에는 일손이 모자라 수확을 하지 못하여 그냥 겨울을 맞는 감들도 많다. 도시에서는 실업자들이 많아서 걱정인데 시골은 일손이 부족하다. 이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인지 갑갑하다.
지난주 시제 때문에 왔을 때 숙부님네 과수원도 사과 수확을 못하여 우리가 짬 날때마다 사과 수확과 감 수확을 해 주고 밤 늦게 귀경하였고 그곳은 오늘도 사과 수확에 정신이 없단다. 사정을 알면서도 사과 수확을 도와 드리지 못하고 도로 위나 뛰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느 지점에선가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 그렇게 늦게 출발했는데 내 페이스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추월을 포기하고 페이스메이커 뒤를 따라가니 달리기가 훨씬 편하다.
사벌왕릉을 약간 지난 지점에서 앞에 가는 두 사람이 내 친구들인 것 같다. 지나면서 보니 그들이 맞다. 페이스메이커는 주자 몇 명과 순식간에 앞서 가고 나는 친구들과 조우하여 서서히 같이 달린다. 눈치를 보니 한 친구가 연습부족으로 페이스가 늦어 다같이 그의 페이스에 맞춘다.
내가 나서 자란 곳은 상주 중심부에서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 북동쪽으로는 올 기회가 전혀 없었고 따라서 지리나 역사적인 내용은 잘 모르는데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친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설명해 주니 역사와 지리 체육 수업을 한꺼번에 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 지점에선가 길 옆으로 인가가 나타나고 길가 옆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배고픈 김에 하나씩 따서 먹으며 가는데 응원하던 중동면사무소 여직원이 담장에 홍시를 잔뜩 따놓고 얼마든지 먹고 가란다. 성의를 봐서 또 하나씩 먹고 고맙다는 인사후 출발한다.
문득 앞쪽을 바라보니 병풍처럼 넓직한 산이 저 멀리 보인다. 산 8부능선쯤에 흰 글씨로 “상주활공장”이라 씌어 있다. 같은 산인데 그 왼쪽으로는 예천활공장이다. 지방자치제가 되다보니 같은 산줄기에서도 활공장을 각각이 운영하나 보다.
달리는 도로의 끝에 웅장한 낙동강이 힘찬 용트림으로 우리를 맞는다. 강수량이 낮아선지 흐르는 강물이 많지 않다. 친구의 설명으로는 저 쪽 건너편 둔덕에 민가가 몇 채 보이는데 그곳이 최인호의 소설과 드라마로도 유명하였던 상도(商道) 촬영장이란다. 상도는 조선시대 후기 인삼으로 부를 축적하고 한 세월을 풍미했던 巨商 임상옥(林尙沃, 호 가포 稼圃)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그의 인생관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즉 ,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서 노력한 대가에 따라 그 재물이 정해진다. 또한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서 그 신용을 쌓고자 한 자에게 돌아간다”
잘 닦여진 도로를 한참 달리니 건설한지 4년정도 된 경천교가 나온다. 이 다리가 없을 때에는 건너쪽(중동면)을 가려면 한참 먼 거리를 돌아서 가야 했단다. 경천교를 건너기 전 왼쪽 산 위를 보니 날아갈 듯 산 정상에 앉아 있는 정자가 보이는데 그 유명한 경천대이다..
경천교를 지나고 은근한 오르막이 나타나는데 오르막길 1~2킬로 지점에 반환점이 있고 거기에는 상주 곶감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얼마던지 먹고 가란다. 마음도 좋지….. 아직 철이 일러 올해 곶감이 출하되지 않아 냉동창고에 보관하던 작년 상품을 가져 왔단다. 약간 찬 맛이 나는 곶감을 서너개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반환점이 23킬로쯤 되니 남은 거리는 19킬로. 이제 조금만 가면 끝날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랩타임 측정을 하지 않는다. 요즘은 항상 기록이 네시간을 넘어가서 측정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시간만 보지 구간시간은 무시하고 달린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 오다 아까 그 면사무소 여직원으로부터 홍시를 하나 더 얻어 먹고 오는데 임진왜란때 육지의 충무공으로 불리던 정기룡장군 묘소가 왼쪽으로 보이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는 다음 약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상주시 관리 구역이라 1년에 한번씩 제례를 모신단다.
정기룡장군 묘소를 지나 삼거리길에 예의 그 사벌왕릉이 있는데 傳沙伐王陵이라 한다. 정확하게 묘지의 주인을 모르고 예부터 전해져 오니 傳자를 붙인 것 같다. 기록에는 신라 54대왕 경명왕의 다섯 번째 왕자 박언창의 묘라는 전설이 있는데, 박언창은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었으나 후에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왕으로 11년간 다스리다 견훤의 침공으로 패망하고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이분이 상산 박씨의 시조이며 이 재실은 상산박씨가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들어가 볼 시간이 없어 누각의 판자 사이로 신도비를 들여다 보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왕릉 옆에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화달리 3층 석탑이 서 있는데 안내문을 대충 훑어 보고 발길을 돌린다.
이제는 다시 양 옆으로 논과 밭으로 된 시골 신작로를 뛴다. 오후 시간이 되어서인지 차량통행이 꽤 많고 사고를 피하려면 도로 끝쪽으로 달리면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시내에 들어오기 전 한 친구가 시장하다는 소리에 민가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먹는데 나는 아까 먹은 곶감이 소화가 다 되지 않아 사양하고 둘이서는 잘 먹는다.
이윽고 도로에 시민들이 즐비하고 악대 소리가 들리니 종합운동장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운동장 언덕을 올라 트랙을 한 바퀴 돌아 골인점에 가니 나를 기다린 초등학교 친구 등 아는 얼굴 여럿이서 반긴다. 아 이제 올해 예정했던 마지막 풀코스를 끝냈구나.
완주 시간은 4시간 45분으로 장시간을 달렸지만 기록에 신경쓰지 않고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하다 보니 그리 지루하지 않은 느낌이다.
운동장 앞 식당에서 점심과 막걸리를 친구들과 즐기고 다른 친구와 2차를 마시고 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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